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Международная конференция «Центральная Азия и Корея: история, состояние и перспективы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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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중앙아시아 외교정책: 과거와 미래

ЦЕНТРАЛЬНО-АЗИАТСКИЙ ВЕКТОР ВО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Е ЮЖНОЙ КОРЕИ

Чо Ын Чжон, докторант PhD, факультет международных отношений КазНУ им. аль-Фараби
I. 들어가며

오늘날 모든 국가가 복잡한 상호관계-그 관계가 종속이든 의존이든 혹은 대등한 관계이든-를 맺게 되는 글로벌 사회 속에서 완전히 독자적인 국가 운영은 불가능하며, 모든 국가는 국제환경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대응하기 위하여 고유한 외교정책을 수립, 시행하고 있다. 광의의 전통적 의미에서 외교는 “국가를 대표하는 관료들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간의 모든 공적 행위”이며, 외교정책의 결정 및 집행과정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대외적 관계를 총칭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과학, 기술 등 문명의 발달로 인류사회가 질적, 양적으로 변화, 발전하고, 이에 따라 국가의 대외업무가 다양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국가의 대외행위 또한 다양해졌다. 오늘날은 외교가 교섭 등의 측면에서만 설명될 수 없을 정도로 폭넓게 행해지고 있다. 여기에 20세기들어 기존의 하드파워에 버금가는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이 증대되며 언급되기 시작한 “공공외교”와 “신공공외교”적 영역을 포함시킨다면 외교의 주체와 범위는 훨씬 더 넓어질 것이다.



II. 한국의 외교정책

한국은 20세기 중반 냉전의 유산이었던 6.25전쟁의 발발을 시작으로 조국의 분단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일궈낸 눈부신 경제성장,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민주화 제3의 물결에 동참해 놀라운 수준의 민주화를 일궈내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은 동북아의 강소국이다. 한국은 발전국가모델에 기반하여 선경제 후정치의 제한적 민주주의 경제정책을 장기간 지속함으로써 단기간에 빠른 경제발전을 일궈냈다는 점에서 기존의 동아시아 발전모델과 전체적인 궤를 같이하나 아래로부터 시작한 민주화 물결이 정부 내 진보적 성향을 가진 그룹과 야권 내 온건 성향을 가진 인사들간의 타협을 통한 민주화로 정착되었다는 점에서는 독자성을 가진다.56 2011년 G20 정상회담과 2012년 핵안보정상회담 등 최근 2년간 대규모 국제행사를 연달아 개최하는 등, 오늘날 한국은 동북아 지역 강국으로서 경제, 정치적 발전 기반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중개자(midest) 역할자를 자청하며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한국외교의 특성

한국의 경우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사회 발전을 이룩하며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자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다는 점에서 여느 국가들과 유사한 보편적인 외교정책 노선을 구사한다. 그러나 내전을 경험하였고 아직까지도 적대적 대치상태가 지속되는 분단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군사동맹관계를 통해 안전보장을 유지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장기적으로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의 특수한 외교목표라 할 수 있다.



한국외교의 목표

한국 정부는 안보, 경제복지, 국위선양, 조국통일을 외교정책의 기본목표로 삼고 구체적인 상황변화에 따라 그 우선순위와 내용을 조정해 나갔다. 1948년 건국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은 앞서 언급했던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미약한 국력, 세계적인 군사, 경제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지리적 요건 때문에 주변정세나 국제질서에 주도적 영향을 주기 보다는 이에 적응하는 형태의 다소 수동적인 외교정책을 구사해 왔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6.25 전쟁과 조국분단이 초래된 직후인 1950년대는 “반공안보외교”의 시기였다. 60년대에는 냉전체제의 완화와 국가 경제발전 장기계획이 시작된 시기로 국가의 외교력이 “경제건설에 집중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평화통일외교”였다. 1970년대는 강대국 간의 데탕트 및 미국 세력의 상대적 약화와 함께 세계정치질서 다원화가 진행되었고, 이념에 가려져 있던 실용주의가 고개를 드는 시기였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를 이용한 북한의 전쟁도발 가능성이 증가되어 평화정착과 통일이 주요 과제로 제기되었다. 80년대에는 “선진북방외교”로 미국과의 협력을 유지하는 한편, 일본 등 기타 우방국들과의 협력관계도 강화할뿐만 아니라, 북한에 의한 전쟁발발의 억제와 남북한 간의 대화 및 교류 증진, 4강(미, 일, 중, 러)의 남북한 상호인정,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 등과 관련하여 공산권 국가들과도 적극적인 외교적 접촉과 교류를 추진하였다. 90년대 냉전이 끝나고 국제사회의 역할자가 다양해 지면서 한국 정부는 전통적인 동맹외교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지역협력과 실용주의 외교 노선을 지향하여 보다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역내 리더국으로 발돋움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 이명박 정부는 세계와의 동반 발전을 발판으로 한국의 ‘아시아 외교’ 확대, 국제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외교강화, 경제 최선진국 진입을 위한 에너지 외교 극대화, 상호 개방과 교류를 바탕으로 한 ‘문화 코리아’ 지향 등이 한국외교가 견지해야 할 주요 원칙이라고 천명하였다.



III. 한국의 대중앙아외교

외교관계의 역사가 길지 않은 상황에서 그 기간동안의 외교를 성격별로 구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한국처럼 집권자의 힘이 두드러지고 권위주의 체제가 상당 기간 지속된 사회에서는 정권에 따라 외교의 정책과 종점이 다르게 마련이므로, 일정기간에 걸친 외교노선을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57 그러나 한국의 대중앙아외교의 경우, 외교수립의 역사가 짧고, 중앙아 국가들이 독립 후 공통적으로 민주화 및 시장경제 도입을 통한 국제사회로의 편입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한국과의 외교관계 발전에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한국을 역사적 조국으로 인식하는 고려인들이 동 지역내에 널리 퍼져있다는 것, 풍부한 중앙아시아의 천연자원부존으로 인하여 역내 지경학적 영향력이 크게 상승했다는 점 등의 호혜적인 외부요소들로 인하여 사회-여론 혹은 개인-역할적 결정요소의 비중이 비교적 미미하다.58 따라서 다소 거칠게나마 한국의 대중앙아시아 정책을 국내외 결정요소에 따라 시기별로 정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중앙아 외교 수립 후 한국 정권이 5차례 바뀌었으나 한-중앙아 협력 기조는 발전일로에 있으며 외교노선이 역행한다거나 정책 결정권자의 개인/역할적 영향력이나 사회적 여론으로 인해 외교정책이 이전 정권과의 상충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의 외교목표 달성을 위하여 중앙아시아는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속적인 경제발전’(sustainable economic development)에 꼭 필요한 에너지 및 광물자원의 공급지를 다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지역일 뿐만 아니라 단순히 자원협력을 위한 대상을 넘어서, 한국의 인프라건설, 물류, 에너지, 금융, 녹색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협력 기회를 제공할 유망한 파트너로 거듭나고 있다. 가장 분명한 예가 바로 한-카 협력이라 할 수 있는데, 카자흐스탄 정부가 전략적으로 채택, 이행하고 있는 장기 국가발전계획인 “산업혁신발전계획”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산업화 지도” 및 “신실크로드 사업”은 꾸준한 해외 신시장 개척이 절실한 한국 기업인들에게 커다란 기회이자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12월에 있을 한국 대선엥서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안철수교수의 경우 자신의 경제공약으로써 “대륙(북방)협력”을 꼽으며 “해양경제권과의 협력으로 산업화 시대를 열었다면, 이제는 북방경제로 한국경제의 새로운 2막을 본격적으로 열어가야 한다”라고 언급했다.59 남북분단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섬이 되어버린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이제는 대륙으로의 보다 적극적 진출이 필요하다는 의견인데, 중국-러시아 등과의 역사적인 관계를 고려할 때 중앙아시아는 한국에게 있어 가장 호혜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신아시아 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동북아시대 구상을 실현하는데 있어, 다자 지역협력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중앙아시아는 한류를 확산시키면서 문화, 예술 협력을 증진시켜 나갈 수 있는 지리적 공간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동남아, 중국, 일본을 휩쓴 한류가 중앙아시아 지역에 상륙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 수출 대기업들의 상품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큰 인지도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여론조사 연구를 확인할 수 있다.60 이처럼 중앙아시아는 소연방 붕괴후 ‘신 거대게임 중심지’, ‘유라시아의 발칸’, ‘유라시아의 심장부’, ‘신 실크로드로의 부상’ 등과 같은 전략적 의미를 가지면서 세계 주요 국가들의 세력경쟁 지역으로 발전했으며, 한국 역시 대중앙아정책의 적극적 구현을 통해 장기적 상호협력을 통한 국익창출을 위해 애쓰고 있다.


한국의 대중앙아외교: 어제와 오늘

시기구분을 경제적인 지표로만 따진다면 수치가 명확한, 외교관계가 수립된 92년부터 98년까지의 “성장기”와 98년-2002년까지의 “위축기(혹은 하락기)” 그리고 2002년부터 현재까지의 “재성장기”로 크게 나눌 수도 있겠으나 단순히 경제적 수치로만 나누면 시기가 너무 세분화 될 수 있고 또 그 이외의 현상에 대한 설명이 어려워 질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한국의 대중앙아시아 외교시기를 주요정책 구축 시 영향을 준 국내외적 결정요소에 따라 정리해보겠다.



형성기: 1992 외교수립부터 90년대 (외교관계 수립부터 97 금융위기후 일시적 침체기까지)

한-중앙아관계의 형성기라 할 수 있는 첫번째 시기는 1992년 외교수립부터 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로 대중앙아 한국외교가 크게 위축되는 시점까지로 볼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이 시기 철의 장막으로 가려져 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한국기업의 활발한 진출이 눈에 띈다. 한국은 90년대 초 중앙아 국가들과 외교관계 수립, 92년부터 본격적인 교역을 시작했다. 한국과 러시아가 나란히 외환위기를 겪어 경제교류가 급속도로 침체된 98년 초까지, 교역 개시 후 5년간 한국의 대중앙아 교역량은 수출이 7억 8,400만 달러, 수입 3억 8,400만 달러까지 급증하였다.61 소련의 붕괴로 인해 예고없는 독립을 얻게된 중앙아 국가들에게 있어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바로 국가 정체성 및 발전전략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당시 발전주의적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행한 한국을 비롯한 일부 아시아 국가들은 매우 매력적인 모델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90년대 초 중앙아 리더들은 앞다투어 이들을 방문, 그들의 경험을 전수받고자 했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1990년대 초반 나자르바예프의 첫 외국 출장이 남한이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국가의 발전과 안정을 위한 주요 모델로 일본, 남한, 싱가폴을 들었다. 이는 한국의 적극적인 중앙아 진출을 더욱 가속화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국제적으로는 소련의 붕괴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개방과 개혁, 탈이데올로기적 협력의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이어졌다. 이념의 장벽이 무너지고, 국제사회에 예고없이 등장한 중앙아시아는 적극적 해외진출을 통한 세계화를 캐치프라이즈로 내건 당시의 한국 외교에 중요한 협력지역이었으며, 공산주의 이념의 붕괴로 체제 개혁을 피할 수 없었던 중앙아시아 지역에게 개혁과 개방, 다자주의적 외교협력 모색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발전기: 2000년대 초~2007년 신정권 취임 전(심화된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한 실리적 협력기)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 경제는 IMF 구제금융을 받는 등 최악의 상황을 경험했고, 중앙아시아 국가들 역시,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인한 부정적 여파와 Nation building과 장기적 발전전략 구축의 어려움으로 전반적인 사회,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러한 기조는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2000년대가 지나며 한국은 경제 전반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과 환율 절하로 인해 수출경쟁력이 상승하였고, 중앙아시아는 주요 수출품인 에너지 및 원자재 국제가격이 상승하며 경제가 회복되면서, 한국과 중앙아시아간 교역도 부활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이에 한국의 대중앙아 외교정책은 심화된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한 실리적 협력기(2000년대 초~2007년 신정권 취임 전)로 접어들게 된다.

국내적으로 동 기간내 한국의 대중앙아시아 교역과 투자가 급증하였다. 2002년부터 시작된 증가세는 2006년에 수출 10억 7,500만 달러, 수입 3억 2,700만 달러를 기록하며, 교역 첫 해인 1992년 대비 100배 가까운 증가를 보였다. 또한 한국은 2005년부터 본격화된 자원외교와 민간기업의 에너지 투자 붐에 편승하여 카작 자원투자를 본격화 했다. 2000년대 들어서 국제 고유가 현상이 지속되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 공업국들의 에너지 소비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는 한국에게 해외 에너지 자원 확보는 생존을 위한 방안이었다. 한국은 2차에 걸쳐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2001년 12월에 1차 기본계획이 발표되었고, 이의 수정 및 보완을 통해 2004년 12월에 2차 기본계획이 확정되었다. 1차 계획은 해외자원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대책마련에 방점을 둔 반면, 2차 기본계획에서는 해외자원개발의 목표를 국제적인 에너지 확보전 속에서의 본격적인 해외 자주개발 에너지원을 확보로 구체화 하고 있다)62을 추진했다. 2006년 11월 산업자원부는 “에너지 비전 2030”이라는 중장기 에너지 정책을 제시하였는데, 이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해외자원개발을 더욱 확대하여 에너지 자주 개발률63을 높인다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해외자원개발 확대를 위해 중앙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전략지역 분석을 통해 맞춤형 진출전략 수립했다.64 한국의 중앙아 자원외교는 중앙아 국가들 중 자원개발 가능성이 높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집중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자원외교를 기치로 2004년과 2005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공식 방문, 기존 카자흐스탄과만 진행하던 자원협력위원회를 우즈베키스탄까지 확대했다. 2006년 산자부(지금의 지식경제부)는 에너지자원의 장기적인 안정적 확보를 위해 중앙아시아 진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65

국제적 요소로, 국제 테러리즘과의 전쟁에 있어 중앙아시아가 가진 지정학, 지전략적 중요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미국의 중앙아 진출 가속화(자국의 군사기지 활용)와 이를 위시하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의 활동으로 중앙아시아 내 열강들의 세력 다툼 심화되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 공업국들의 에너지소비 증가로 국제고유가현상도 지속되었고, 많은 국가들이 해외자원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바야흐로 “에너지안보”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에게 있어 중앙아시아 지역이 가지는 중요성을 한층 부각시켰다.



성숙기: 2007년 이명박 정부 취임 후 현재까지(-중앙아 협력의 다변화기)

지난 9월 12-14일 이명박대통령은 카자흐스탄을 방문, 지난 2004년 서울시장으로서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것을 포함하여 7번째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실제로 1살차이인 양국대통령은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하고 막역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의 발전주의적 국가관, 실용주의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국가관과 매우 유사하여, 양 정상은 양국협력관계를 크게 심화, 확대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한국의 대중앙아 정책의 마지막 단계는 2007년 이명박 정부 취임 후 임기를 두 달 남겨둔 현재까지로, 한-중앙아 협력의 다변화기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적으로, 동 기간동안 양국의 경제관계는 기존에 자원외교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었던 협력기조가 보다 다변화 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무역구조가 매우 이상적이고 효율적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 한국과 중앙아시아 대외교역 비중은 가능성과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그 동안 한국이 관심을 기울였던 자원분야에서 서방의 기술력 및 규모, 중국의 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의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생각한 만큼의 효율을 얻기 어려웠던 점과, 길지않은 협력기간으로 인하여 상대적인 탐색기간이 길었던 데 원인이 있었다. 이에 한국정부는 보다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대중앙아 외교정책을 추진하게 되었으며 이는 2009년 양국정상이 체결한 공동성명에서 “양국관계를 전략적 파트너쉽”으로 격상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협력의 폭을 무역, 투자, 환경, 농업, 인프라, 건설, 과학기술, 원자력, 교육, 문화 등으로 확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제, 지역기구를 통한 실질협력 증진 등 국제사회에서의 협력도 도모하기로 약속했다. 이러한 기조는 특히 한-카 관계에서 더욱 두드러졌는데, 실제로도 한카간 에너지, 광물협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산업, 인프라 협력의 강화를 위해 지난 2011년 8월 한-카 기술협력센터가 개소하여 공동연구 및 실질사업개발을 담당하고 있으며 발하쉬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과 아트라우 석유화학단지 건설 등 대규모(각각 40억불) 협력사업이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다. 이 외에도 ICT, 원자력, 녹색기술, 사회인프라, 물류, 교통, 중소기업 등 양국협력은 폭과 깊이를 더해가며 성숙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여기에 올해로 6회를 맞는 한-중앙아 협력포럼 역시 포럼이라는 형식을 빌어 참석자간의 자유로운 의견교환을 가능하게 했고, 한국은 포럼 개최자로써 다자회담의 출발선에서 통합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미국발 금융위기 및 미국주도 세계질서의 약화, “다자주의” “대륙세력으로의 협력강화”, “실용주의” 등이 한국의 대중앙아시아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중동의 봄, 유럽발 경제위기 등도 간과할 수 없는 국제관계의 흐름이다. 이제 세계화는 국가간의 협력 필요성을 증대시키며 다자주의(Multilateralism)66 흐름을 이끌었다. 이러한 다자주의에 대한 관심 제고는 중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다양한 다자기구의 생성과 이를 통한 역내 평화체제 구축과 경제협력 노력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한국 역시 전통적인 해양세력과의 동맹외교를 유지하는 가운데 동북아 역내 영향력 강화와 대륙세력과의 연계를 통한 지역협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중앙아시아지역과의 협력강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로 국제사회에서의 양국간 협력기조를 공고히 하고 있다.


IV. 결론

2012년 양측은 “수교20주년”을 맞으며 협력의 성숙과 다변화를 요구받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다자협력을 통한 상호경제협력과 연대를 통해 강대국들과의 관계설정에 있어 한-중앙아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와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강대국들의 이해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전략적 요충지역으로서 양측의 협력은 유라시아 평화와 우호 증진에 기여할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7-8세기부터 한-중앙아는 고대로부터 실크로드와 초원길을 통해 통상을 해왔고, 문화와 상품을 교환해 온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사마르칸트에서 발견된 7세기경의 벽화에서 한국인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도 한-중앙아는 복원되고 있는 신 실크로드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물류망을 건설할 수 있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한-중앙아는 알타이 문명이라는 공통의 문화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알타이문화는 중화문화, 슬라브 문화와는 엄연히 구분되는 역사적, 인류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으며 현대에 와서도 언어와 예절, 생활관습, 사상 등에서 많은 공통점의 기반이 된다. 이러한 알타이 문화는 한-중앙아의 정신적 공동체의식 형성에 기여한다고 본다. 지난 20년의 시기 동안 한국의 대중앙아 외교는 다양한 국내외적 요소들로 인하여 일정한 부침을 겪기는 하였으나, 한국의 대중앙아시아 외교의 우호와 발전기조는 꾸준히 이어져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Секция 1.3 Этнография и социология

Модератор секции: Ем Наталья, к.и.н., кафедра корееведения и японоведения КазНУ им. аль-Фараби




KORYŎMAL AND RUSSIAN INFLUENCE

КОРЕ МАР – ЯЗЫК КОРЕЙЦЕВ ЦЕНТРАЛЬНОЙ АЗИИ: СОСТОЯНИЕ И ПЕРСПЕКТИВЫ ВЫЖИВАНИЯ

Штокелова Линда, магистрант университета (Прага, Чехия)
Introduction

There are roughly 370 000 ethnic Koreans living in the territory of Central Asia, most of them in Uzbekistan (198 000) and Kazakhstan (105 000). It is 4th largest Korean minority in the world after China, USA and Japan, and it is 28th largest ethnic group in the former Soviet Union. These people are usually called Koryŏsaram (고려사람) and their history dates back to the year 1863, when first of them came to the land of Russian Far East. In 1937 were Koryŏsaram forcely moved from the Russian Far East to Central Asia and it is possible to say, that since that time they lost all contacts with their ethnic relatives on Korean Peninsula. More than 50 years of isolation, led to creation of their own specific culture, lifestyle, habits and also language. This paper aims to describe reasons of distinction between this language, usually called Koryŏmal (고려말), and standard Seoul Korean with special stress on Russian infuence.

Korean minority in Kazakhstan, Uzbekistan and Russia still have Korean ethnicity, therefore their nativer language should be Koryŏmal. However, according to the sources, more than 85% of Koreans living in Kazakhstan speak only Russian at home and Koryŏmal is mostly used only by erderly people in spoken form. Therefore, the function and use of Koryŏmal has in the social life of Kazakhstan Korean minority only limited function. Sice the emmigration of Korean minority to the Russian Far East, Koryŏmal exists almost only in spoken form and is mostly used only among the family for communication about common topics in the household. This makes Koryŏmal extremely hard subject to study, because it is not easy to find version which will be to some certain extend standartized.

Simply we can say, that distinctive features of Koryŏmal were formed by four factors. Firstly, Koryŏmal is different from standard Seoul Korean because of it’s origin. Ancestors of present Koryŏsaram mostly came from Northern Hamgyŏng Province (함경북도), where people use very specific dialect. This dialect belonges to the northeast dialect group (동부방언지역)67 and it is one of dialects which differes the most from the standard Seoul Korean as we know it nowadays. Besides, Northern Hamgyŏng dialect is not monolitic and consist of few different subdialects. Most ancestors of Koryŏsaram spoke the Jukchin(육진) dialect68, which is according to some recent studies peculiar from other subdialects to such an extend, that it should be seen not as a part of northeast dialect group, but as a dialect group itself. Moreover, ancestors of Koryŏsaram escaped from Korea before estabilishing of standard spelling, which was based on the Seoul dialect. Compare to Standard Seoul Korean shows the Northern Hamgyŏng dialect many distinctive features in spelling, pronuncation and grammar. For further studies, there is possible to use the „Dictionary of the Northern Hamgyŏng dialect“ (함북 방언 사전, Hambuk pangŏn sajŏn, 1986) compiled by Korean linguist Kim Tchä-gyun (김태균) or see related works of linguists Kim Hyŏn-gyu (김현규) , Allan Ramsay or Ross King.

Another factor, which affected Koryŏmal is russification and sort of basic wiev of Russian influence on Koryŏmal will be topic of this paper and I will explain later in details. Let me mention one more reason of difference, and that is the influence of the local turkic languages, if we speak specificly about the case of Kazakhstan, it is mostly Kazakh. Koryŏsaram generally took up from Kazakh language expressions describing specific cultural elements, such as names of meals (for example bishbarmak or ayran), special pieces of clothing, etc. On the other hand, Kazakh adopt some expression from Korean describing typical Korean cultural elements, such as kimchi (김치), kuksu (국수), etc. There exists, in my opinion, one more reason of distinction between Koryŏmal and standard Seoul Korean, and it has connection with the reason I mentioned at the first place. Standard Seoul Korean was estabilished after Koryŏsaram left Korean Peninsula and of course didn‘t stay the same till present days. Korean is, as any other language, constantly developing and adapting to the changing socio-cultural environment. In standard Seoul Korean are nowadays used many Sinokorean expressions, which came to be used in Korean speech during the 20th century, so they are unknown to Koryŏsaram. Besides, there has been remarkable American influence on South Korea, which started in the 90s of 20th century and nowadays seems to be constantly growing. This American cultural influence led to use of many English expresions in every day Korean, and also these expressions are unknown to Koryŏsaram.

The ability of using Koryŏmal as well as character of the speech of course depends on the age and social group. In general, we can say that most of the young people under the age of thirty cannot speak Koryŏmal at all, the age group from 30 till 60 has certain knowledge of it, in other words, they have high level of understanding Koryŏmal and they can actively use it in daily life. Only the group older than 60 can speak Koryŏmal fluently.

There shoul’d be mentioned the big fashion of learning the standard Seoul Korean among the young Koryŏsaram. This tendency we can notice since the year 1989 and perestroika, when, because of a certain liberation among the whole Soviet Union, all the ethnic groups showed remarkable renewal of interest and pride in their ethnic and national question. Koryŏsaram were not exception and they were eager to estabilish ties with their ethnic relatives on the Korean Peninsula. Recently, there has been a lot of discussion, wheather this is an attempt to revive and maintain their lost mother language or just learning one more foreign language. In this difficult question, I agree with Ross King, that, because of the big diference between these two dialects, learning Seoul Korean cannot be seen as reviving of language tradition, but simply as learning a new foreign language. It is an understandable choice, if we consider the growing economic influence of South Korea as well as the sudden interest about Korean culture not only in the neighbouring states in Asia, but also in North America nad Europe.
Russian influence

Russian language started to influence Koryŏmal since the first inhabitance of the Russian Far East by Korean people in the second half of 19th century. At the beginning, it was possible to find Russian words mostly in the political, scientific and technical terminology. Nowadays, we can find huge amount of Russian loanwords also in the everyday speech. We can see also another phenomenon: use of a large number of Korean words when Koryŏsaram talk together in Russian. It is definitelly not easy to sum up the Russian influence on Koryŏmal, mainly because of the fact, that way of use of Koryŏmal depends on socio-cultural factors like age, occupation, location, level of education, etc. Use of Koryŏmal by middle aged person, who is using this language every day both at home and at work will be very different from the way of speech of a young person, whose spouse is for instance Russian and whose level of Koryŏmal is only passive.

In the normal speech of Koryŏsaram, we can trace two phenomenons. Korean words used in Russian sentence and Russian words used in the Korean sentence. Here are few examples:

When two Koryŏsaram talk together in Russian, the word order and grammar will follow Russian rules, but we will hear a lot of Korean expressions like: „그런데“ [Kŭrŏnde] (by the way), „오늘“ [onŭl] (today). „왜“ [Wä] (why) etc.

And the similar situation we can notice when Koryŏsaram talk together in Korean. In that case, they will use Korean word order and grammar, but add for instance Russian conjunctions like „и“ [i] (and), „а“ [a] (but) or hybrid words like „люби하다“[liubihada] (like) or „строй하다“ [stroihada] (build). As well as there will be commonly used Russian words like for instance „бaзар“ [Bazar] (market), which dosen‘t have any equvivalent in Korean or „машина” [mashina] (car), because car was not invented by the time Koreans first came to the Russian Far East, so the usual word „자동차” [chadongcha] was unknown to them.

The speech in hybrid Russian with use of words from own their own language or speach in their own language with addition of Russian words is deffinitelly not a phenomenon possible to see only in the case of Koryŏsaram, but something similar we can find among all the other ethnic minorities of former Soviet Union. Moreover, this isn’t unusual phenomenon, when we compare Koryŏsaram to diasporas of ethnic Koreans in other countries all over the world. Even in my home country, Czech Republic, I noticed among the Korean community some remarkable hybrid expresions like „nákup 하다“ (nákup-shopping, to do shopping), „hospoda에 가다” (hospoda-pub, go to pub) or „chleba먹다“ (chleba-bread, to eat brad). These expressions are commonly used, even though there exist propper Korean ekvivalents (쇼핑 for shopping, 술집 for pub and 빵 for bread).

As it was mentioned above, the way of speech of Koryŏsaram is affected by various socio-cultural factors. One of these factors is age group, and I would like to use one example from book written by Kho, S.M..69 Member of older generation will say sentence: „나 상점에 가서 곱은 신발 한 디들 싸왔다“ [Na sangjŏme kasŏ kobŭn sinbal han tidŭl ssawatta] (I went to the store and I bought pair of nice shoes), younger generation will probably express the same with sentence: „나 마가진 가 곱은 뚜플리를 싸왔다“ [Na magajin ka kobŭn ttupchŭllirŭl ssawatta]. So, instead of Korean word „상점“ [sangjŏm] (shop) will youger generation use russified word „마가진“ [magajin], which was created from russian word „мaгазин“ [magazin] (shop) and instead of Korean word „신발“ [sinal] (shoes) will use the russified word „뚜플리“ [ttupchŭlli], which is derived from the russian word „туфли“ [tufly] (shoes).

The Russian influence on Koryŏmal shouldn’t be limited only on Russian loanwords, but we can trace it also in the specific use of phrases and words, especialy verbs. There exist many examples in which are Russian expressions directly translated into Korean, even though there exists different expression in standard Korean. And these expressions are now normaly used in Koryŏmal. Here I would like to give few examples. For instance „to pay an attention“ is in standard Korean „주목을 하다“ [jumogŭl hada], but in Koryŏmal „주목을 돌리다“ [jumokŭl tollida] („돌리다“- turn), which is direct translation of Russian expression „обратитъ внимание“ [abratiť vnimanie]. Another example could be the expression „사흐마트를 놀다“ [sahŭmatchŭrŭl nolda] (to play chess), where both noun and verb are different from the standard expression and it is again clear direct translation of Russian expression „игратъ в шахматы“ [igrať v shachmaty]. In standard Korean is used expression „장기를 두다“ [janggirŭl tuda].


Russian loanwords

Russian loanwords started to appear in Koryŏmal since the very beginning of Korean emmigration to Russian Far East in 1863. After the forced deportation to the region of Central Asia in 1937, number of Russian loanwords in Koryŏmal increased rapidly and this tendency continued for a long time. Of course, there exist certain characteristics for how the Russian loanwords changes according to the typical Korean pronuncation and writing. Here, I would like to give and example of such characteristics:



  1. Vowel „으“ [ŭ] is being inserted between the consonants to prevent clustering of consonants, which is not typical for Korean. Insertion of „으“ [ŭ] is typical for loanwords from any other languages, not only from Russian. Very often it is added to the end of the word which is ending with consonant. Only consonants „ㄹ“, „ㅁ“ a „ㄴ“ [l, m, n] are exceptions.

  2. Final „k“ and „t“ of Russian words are transcribed with Korean aspirated consonants „ㅋ“ [kch] and „ㅌ“ [tch]. Russian „ф“ [f] is usually replaced with Korean „ㅍ“ [pch]. Combinations of consonants „kr“ or „kl“ are replaced with Korean „ㅋ“ [kch].

  3. Russian voiceless consonants are transcribed with Korean double consonants and voiced consonants are transcribed with plain consonants.

Koryŏsaram are using Russian loanwords from many fields. Mostly, they are using loanwords to describe such things, which didn‘t exist in Korean by the time ancestors of Koryŏsaram left Korean Peninsula. For these expressions are nowadays in standard Seoul Korean used loanwords from English or Sinokorean expressions. I will now give some examples from few different fields of vocabulary. As we can notice, most of these words doesnt have pure Korean equivalent, but even in standard Korean, loanword from English or Sinokorean expression is used.

From the field of social vocabulary, I can give following examples:



  1. „아프또부쓰“ [apchŭttobussŭ] (bus) from the Russian word „автобус“ [avtobus]. In Korean it is „버스“, [bosŭ] from the English word „bus“.

  2. „빠르찌산“ [pparŭjjisan] (partisan) originated from the Russian word „партизан“ [partizan]. In Korean it is possible to use expression „빨치산“ [ppalchisan] from English word „partisan“ or „게릴라“ [guerilla] from the expression „guerilla“

  3. „소꼴라드“ [sokkolladŭ] (chocollate), from the Russian word „шоколад“ [shokolad]. In Korean, there exists expression „초콜릿“ [chokchollit] from the English word chocollate.

  4. „유모르“ [yumorŭ] (humor) from the Russian origin „юмор“ [yumor], in Korean „유모” [yumo].

From the cultural field of vocabulary, I can give following examples:

  1. „호께이“ [hokkei] (hockey) from the Russian word „хоккей“ [chokkei]. In Korean it is „하키“ [hakchi] from English word „hockey“.

  2. „쓰크립까“ [sŭkchŭripkka] (violin), from the Russian word „скрипка“ [skripka], in Korean „바이올린“ [paiollin].

  3. „그라피까“ [kŭrapchikka] (painting) from the Russian word „графика“ [grafika], in Korean “그림“ [kŭrim].

  4. „쓰뽀르트“ [sŭpporŭtchŭ] (sport) from the Russian word „спорт“ [sport]. In Korean, there exist one Sinokorean expression “운동“[undong] and one loanword from English “스포츠” [sŭpchochŭ].

From the vocabulary of technical and industrial field, I can give following examples:

  1. „깔로리야“ [kalloriya] (calory) originated from the Russian word „калория“, [kaloriya], in Korean, there exist expression derived from English “칼로리“ [kchallori].

  2. „뜨락또로“ [ttŭrakttoro] (tractor) from the Russian word „трактор“ [traktor], in Korean “트랙터“ [tchŭräktchŏ].

  3. „나쏘쓰“ [nassossŭ] (pump) from the Russian word „насос“ [nasos], in Korean „펌프“ [pchŏmpchŭ].

  4. „데뽀“ [teppo] (garage) from the Russian word „депо“ [depo], in Korean, there exists Sinokorean expresson „차고“ [chago].

Russified expression are also commonly used in expressing the names of cities and states. Here I give few examples:

  1. „빠리스“ (Pparisŭ, Paris) in Korean „파리“ (Pchari) and in Russian „Париж“ (Parizh)

  2. „다니야“ (Daniya, Denmark), in Korean „덴마크“ (Denmakchŭ) and in Russian „Дания“ (Daniya)

  3. „예브로빠“ (Yebŭroppa, Europe), in Korean „유럽“ (Yurŏp) and in Russian „Европа“ (Yevropa)

  4. „뽈사“ (Ppolsa, Poland), in Korean „폴란드“(Pchollandŭ) and in Russian „Польша“ (Pol´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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