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Международная конференция «Центральная Азия и Корея: история, состояние и перспективы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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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문화 사회의 생존 논리 : 송 라브렌찌의 「삼각형의 면적」

고려인들의 집단 이주는 중앙아시아의 농업 생산력 증대에 많은 기여를 했다. 연해주에서 황무지를 개척하여 벼농사를 성공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에서도 벼 재배에 성공하였다. 그들이 집단 이주하기 전 1928년에 이미 고려인 70여 가구 300여명의 벼 재배업자와 양잠업자들이 연해주에서 세미례체군으로 이주하여 고려인 노동협동조합인 ‘까작스끼 리스’를 조직하고 벼 재배에 성공하여 1931년에는 소련에서 카자흐스탄이 가장 중요한 벼 재배 국가가 되었다.32) 여기에 집단 이주해온 고려인들의 합세는 중앙아시아의 식량 생산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지 중앙아시아 사람들과 고려인 사이에 상호 협력적 관계가 우호적으로 형성될 여지가 있었고, 그들 모두에게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 공동체 의식이 요구되었다. 김기철의 「첫사귐」(1938)이나 주동일의 「백양나무」(1970), 김 보리쓰의 「집으로 가는 길」(1988) 등은 카자흐사람과 고려인이 친구가 되거나 상호 협력하는 관계의 다민족 다원사회를 희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려인들이 현지인과 함께 섞이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던 것이다. 그래서 현지 적응의 동화전략이 그들이 생존 전술이었다. 그들이 농촌을 떠나서 도시로 이주33)한 이후의 삶 역시 그런 동화전략이 작동하고 그 속에서 자기실현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 라브렌찌34)의 「삼각형의 면적」35)은 옷 짓는 재봉일로 성공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데, 조명희의 미망인 황명희도 재봉틀로 3남매를 훌륭하게 양육했다고 한다. 인식과 행위의 주체이자 서술자인 ‘나’가 재봉일로 성공한 어머니의 삶을 직접 독자에게 말을 걸면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어느 날 ‘나’는 ‘좀 웃어볼까’ 하고 문화휴식공원의 ‘웃음의 방’에 갔다가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한다. ‘웃음의 방’에 들어서면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 이리저리 비뚤어진 모습으로 거울에 비치는데 어떤 젊은 남녀는 비틀려 보이지 않고 반듯하게 거울에 비취는 것이었다. 너무도 이상해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어머니는 그 두 남녀는 며칠 전에 결혼한 젊은이들인데 자신이 그들의 옷을 지어 주었고 오늘 아침에 그들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이것은 어머니가 지은 옷을 입으면 신기한 마법이 생긴다는 사실의 극단적인 예 중의 하나이다. 또 하나의 예는 무역대표가 어머니가 재봉한 옷을 입고 독일에 가서 압연품을 자르는 기계를 사들이는데 유리한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온 경우이다. 그리고 훗날 옷 만드는 일의 허가가 문제되어 형님네 도시로 떠나서 기성복공장에 취직하고 거기서 만든 작업복을 입은 건설공이 시험에 우등 합격한 일도 같은 경우이다. 서사의 형식으로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서술자의 말을 통해서 제시된 어머니의 신통력은 무수히 많다. 감기에 걸린 이웃집 소녀에게 손수건을 만들어주면 그 애의 감기가 말끔히 떨어진다는 것, 낙제생에게 바지를 지어주면 좋은 성적으로 진급한다는 것, 증기계 제작공장의 일꾼에게 작업복을 지어주면 상부의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 등이다.

물론 이러한 사건들은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그럴만한 개연성이 충분한 것은 어머니가 옷을 만들기 위해 몸의 치수를 재는 방법의 독특함 때문이다. 어머니가 만든 옷을 입으면 좋은 일이 생기거나 성공한다는 마법 같은 사실이 개연성을 갖도록 작가는 옷 만드는 방법과 행위가 예사롭지 않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야기가 거기까지 가서는 보통사람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재봉사들도 모를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위풍 있는 사람더러 온갖 잔일에 대해서 캐여묻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아이가 몇이며 공부는 잘하는지, 안해는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그 사람은 동부인을 하고 영화구경을 다니는지, 공장의 아래일군들은 그를 어떻게 대하는지, 아이들을 기르기 힘이 많이 드는지, 축구구경을 다닐 겨를은 있는지, 높은 지도부에 아는 사람아이 있는지… 어머니는 나이가 벌써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문자의 말인 로씨야말로 말을 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캐여물었습니다. 그리고 대답을 들을 때마다 갑자기 한 팔을 쭉 펴고 웬 숫자인지 중얼거리고 종이쪼박에 얼른 써놓군 하였습니다. 나는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옷을 마를 때 필요한 어깨며 소매며 품의 길이였습니다. 때로 어머니는 왼쪽 어깨의 끝으로부터 등을 지나 오른쪽 팔굽까지 재야하였습니다. 그렇게 잴 때는 자 대신에 가운데에 매듭이 있는 명주노끈을 썼습니다.36)

옷을 마르기 위해서는 치수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 재봉사의 상식일 것이다. 자를 사용하지 않고 몸에 맞는 치수를 정확히 잰다는 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비결이다. 어머니가 서툰 러시아말로 주문자와 이러저런 일상사에 대해서 묻는 행위는 그 사람의 인품과 개성을 살피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몸의 체질을 측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사람의 인품과 개성에 맞는 옷을 만드는 신비한 능력이 전제되면 어머니가 만든 옷은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능력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그래서 비결이다.

그런데 마음씨가 곱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옷을 잘 만들어 주어도 장래가 성공적이지 못하게 된다. 어느 날 어머니가 ‘세력 있는 여자’의 옷을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신경질을 내고 옷 짓기를 싫어하는데, 그 여자의 품성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여자의 인품에 어울리는 옷이 아니라 솜씨만 있는 예쁜 옷이기 때문에 그 여자는 직책이 낮아지게 된 것이다. 이 일로 해서 “어머니는 의심스러운 일솜씨로 사람들의 운명을 변경시키는 알 수 없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이로 말미암아 ‘국영양복점의 재봉사들의 신소’가 몇 번 이어지고, 구역재정부의 검사기관에서 ‘비법적인 로동’에 대한 검사가 시작된다. 결국 어머니는 많은 벌금을 물고 더 이상 옷 만드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옷을 지어달라는 주민들의 부탁을 피해 ‘형님’네로 가서 기성복공장에 취직하고, 기성복 만드는 일을 초과달성하여 상을 받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노동자의 규정 보수를 낮추고 생산량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단추를 다는 일을 하다가 '나‘의 권고를 받아들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옷을 짓는 면허를 받아 어떤 장애도 없이 바느질 주문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머니의 신통력은 사라지게 된다. ‘진실과 사랑’이 있는 삼각형의 맨 꼭대기에 올라섰던 어머니가 ‘시기와 악의’의 맨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옷 짓는 일을 하지 않게 되고 오직 다 자란 손자의 적삼을 지어주는 정도에서 그쳤다. 어쩌다가 손자가 낡은 재봉틀로 유행 바지 ’바나나‘를 지어 입고 자랑하자 동무의 옷도 지어주어야 하다고 충고한다. 할머니는 손자가 바지를 짓는 모습을 보고 크게 기뻐한다.

할머니는 방구석에 앉아서 손자가 치수를 잴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손자는 자를 들지 않았습니다. 동무하고 어제 학교에서 있은 우스운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따금 손을 우로 올려던지듯이 하고는 수자를 대고 종이에 적군 하였습니다…

《아 하느님… 옳게 하신 일입니다!》하고 할머니는, 우리 어머니는 웨쳤습니다. 그리고는 싱그레 웃고 저녁 차리러 부엌으로 나갔습니다.37)

몸의 치수를 재는 방법이 할머니와 손자가 똑 같다. 할머니의 신비한 기술이 손자에게 이어진 것이다. 손자가 성공적으로 세상에 뿌리내릴 자질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할머니의 마음은 넉넉하게 되는 것이다.



다소 신비스러운 행위와 사건을 소설화하면서도 이것이 개연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삶의 현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서른여섯의 나이에 홀몸으로 온갖 설움을 다 겪고 견디면서 아이 넷을 키우는 과정이 서술자의 요약 제시나 인물들의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 어머니는 시집왔을 때 ‘애기’라고 불릴 만큼 키와 몸집이 작았다. 1937년 강제이주를 당할 때 어머니는 부모와 오라비들과 해어져야 했다. 1949년까지 공민증 없어서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없었던 고려인들도 이주의 자유를 갖게 되었다. 이동금지 명령이 폐지된 사실을 작가는 “조선사람들은 이동의 자유를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생활이 보여준 바와 같이, 새 고장이 참으로 고향땅 같이 귀중하게 되었습니다.”38)라고 서술할 만큼 1949년의 이동금지법 폐지는 고려인들이 새로운 활력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수소문 끝에 부모와 오라비들의 주소를 확인한 어머니는 러시아말을 단 몇 마디밖에 모르고 ‘까라깔빠끼야말’은 한 마디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혼자 짐자동차를 타고 그들을 찾아 떠났다. 그 짐자동차에서 ‘카사흐늙은이’의 양털외투의 찢어진 옷소매를 알뜰히 기워준 일이 계기가 되어 ‘카사흐늙은이’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 늙은이가 젊었을 때 경험한 사실을 어머니에게 들려주고 다시 어머니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나’가 재구성해서 서술한 것이 다음의 대목이다.

그는 여러 해 전 그와 같이 궂은비가 내리는 가을날 밤에 쟘불역에서 어느 민족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웨치는 소리, 우는 소리를 들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을 짐자동차에 실어다가 락타가시덤불과 위성류들 사이에 부렸습니다. 흰웃옷에 부연 솜저고리를 입은 사람들은 자존심을 잃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운전수들과 민경원들의 장화발을 움켜잡으며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도로 실어가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찬바람이 부는 그런 한지에서는 아이들도 늙은이들도 다 얼어 죽을 것이고 젊은이들도 늙은이들도 아침까지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들 하였습니다. 운전수들은 장화발을 움켜잡은 애원자들의 손을 뿌리치면서 자기들은 바로 거기에 부리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달리 할 수는 없다고, 명령을 어기면 총살까지 당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39)

소련 당국이 중앙아시아에 도착한 고려인들을 사막의 곳곳에 흩어놓은 사실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보여준 경우는 흔치 않다. 그들은 고려인들은 몹쓸 문건을 버리듯 그렇게 사막 한 가운데 내팽개친 것이다. 그래서 버려진 고려인들은 “몇 명의 간첩과 변절자가 있다고 해서 온 백성을 잡초처럼 뿌리 채 뽑아던지는 법이 어데 있단 말이냐”40)고 절규하였던 것이다. 그때 ‘차반’이었던 그와 그의 아내가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 그곳에 갔을 때 고려인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쌀을 부어놓고 그 쌀자루포대를 덮고 자신들의 등으로 노인과 아이, 여인들을 둘러싸서 찬바람을 막고 있었다. 그 ‘차반’ 부부의 도움으로 고려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런 카사흐사람들의 호의적인 도움은 다른 소설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예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것은 따뜻한 양털외투나 모닥불이 아니라 동정과 결단성이라는 것”41)이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이것을 ‘자혜심’이라고 명명한다.

물론 이 에피소드가 어머니의 재봉기술이 ‘나’의 아들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전체 서사와 겉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민족들이 서로 도우면서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이나 공민증 없이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고려인들의 실상을 역사적 사실로 보여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6. 고려인 단편소설의 지형학적 위치 : 결론을 대신하여

중앙아시아 고려인 작가들이 소설을 쓰는 일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역사”를 쓰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상기해낸 것은 경험적 과거라기보다는 순수 과거로서, 겪었던 그 순간에 이미 알아챘던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떤 것, 비자발적으로 떠올려진, 억압과 망각 속에 그 자체로 보존된 과거를 ‘지금 여기’에서 되살리는 작업이었다.

너에게 아버지가 없고 네가 조선말을 모르는 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 크면 너는 자기 민족의 력사를 알게 될 거야. 지금 책에 쓴 그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력사를 말이다. 너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리라는 것을 알게 될 거다. 그것을 알게 되면 넌 더 자유롭게 살 수 있겠지. 그리고 너 보고 그런 말을 물어보는 사람들은 미련해서 그러는 거야. 그것들은 앞으로도 그냥 그런 질문을 할 거다. 그것들은 조국을 배불리 먹여주고 편안히 근심없이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만 여기기 때문이야. 그래 그들은 자기들과 조곰이라도 다른 점이 있는 사람을 보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의심을 품고 근심을 하고 호기심을 내는 거야. 자기 밥그릇이 축나지나 않는가 해서…중략… 조국이란 기억이야. 조국이란 바로 사람들이야. 같이 놀며 자라고 같이 일을 하고 고락을 같이 한 사람들이란 말이다.”42)

위의 인용문은 강 알렉싼드르43)의 「놀음의 법」44)에서 러시아인이고 무용 안무가인 의붓할아버지가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서 적용되고 있는 ‘놀음의 법’에 짓눌려 고통 받고 있는 ‘나’에게 들려준 말이다.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조국은 남북으로 갈리어 국가체제를 이루고 있는 한반도가 아니라 기억이고, 고락을 함께 한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고락을 함께 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역사가 곧 그들의 조국이다. 실재라기보다는 기억 속에 살아있는 ‘상상의 공동체’가 그들의 조국인 셈이다. 지리적 장소인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들이 창조한 문화적 공간이 그들의 역사이자 조국이 것이다.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리라는 것이 담겨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 역사를 알면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또한 러시아 사람들에게 고려인들은 밥그릇을 축나게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러시아사람들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의심을 품고 근심하고 호기심을 내는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조건은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생존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면서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가 그들의 조국이다.

그래서 고려인 작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조국을 건설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 작업은 고려인들의 억압되고 망각된 기억 속에 살아있는 역사를 되살리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 되살려낸 소설의 허구적 공간이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조국이다. 그래서 소설 쓰는 행위는 고려인들의 ‘상상의 공동체’를 재현하여 조국을 건설하는 일이자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앤더슨에 따르면 민족이라는 개념은 원래가 ‘상상의 공동체’이다. ‘민족성(nationality’, ‘민족됨(nation-ness)’, ‘민족주의(nationalism)’가 특수한 종류의 문화적 조형물이라고 한다면45), 민족 역시 원래부터 존재하던 본질적인 요소라기보다는 여타 민족들과의 관계, 즉 갈들이나 접촉 등을 통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회적ㆍ문화적 구성물일 수밖에 없다. 서구에서도 민족의 개념은 18세기 이후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만들어지고 형성된 것이다. 그 민족 공동체는 특정한 정본 언어(script-language)로만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고, 다른 족속들과 구별되는 삶의 방식과 우주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동질성이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46) 따라서 그 구성원이 사용하는 정본 언어는 그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실체이면서 동시에 그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중요한 매개체인 것이다.

따라서 고려인들이 민족어인 한국어의 사용이 점점 줄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작가 한진이 공동창작집 ��오늘의 빛��을 편집하고 머리말에서 “지금 모래시계의 모래가 흘러내리듯 조선말을 아는 조선사람의 수가 시시각각 줄어가고 더욱이 조선글을 아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어졌다.”고 진단하고, 이 창작집을 누가 “읽어주겠는가?”고 한탄한 것은 고려인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주 3세들의 민족어 사용은 더욱 심각하다.



나는 한국을 주제로 한 그림을 아직 그려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한국인이고 내가 이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 정반대로 나는 항상 이것에 대하여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하나의 생각으로 인해 나는 잠을 깨곤 한다. 유럽인인가, 아니면 심지어는 종이에 한국어로 자신의 이름도 적지 못하는 한국인의 외모를 가진 러시아인인가?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긴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나이 든 분들에게서 물려받은 언어로 대화는 가능했는데, 이런 언어로는 한국에서는 대화가 되지 않겠지? 나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47)

한국에도 잘 알려진 조선족 5세, 고려인 미하일 박이 러시아어로 창작한 단편소설 「천사들의 안식처」(1986)에서 화가인 주인공 ‘나’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위의 인용문은 이주 3세대 이후의 고려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어로 자신의 이름도 적지 못하는 한국인의 외모를 가진 러시아인”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 속에서나마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미하일 박의 노력은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려인의 언어가 아니라 러시아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이 작품은 러시아문학의 주변부로서 소수자문학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진이 「공포」를 통해 고려인들의 말과 문자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의 공간을 재현하고 창조해내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리선생’이 죽음을 무릅쓰고 ‘광복을 념원한 애국렬사들’의 혼이 담긴 ‘조선고전서적’을 지켜낸 행동의 결단성과 삶의 족적이 새로운 민족 공간으로서의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김기철의 「복별」은 고려인들이 일본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하여 무장투쟁의 대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행동의 결단성을 구체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다민족국가인 소비에트연방에 하나의 소수민족의 자격으로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갔다. 사회주의 국가건설에 고려인들이 나름의 기여를 했다는 주인의식의 창조가 소련 사회에 끼어들기 위한 전략의 일종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경험의 총체가 그들만의 조국을 상상 속에서 만들어내는 일이 된다.

다민족, 다문화 사회의 생존 방식을 보여준 송 라브렌찌의 「삼각형의 면적」도 카자흐인과 고려인의 우호적 관계,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의 동정과 결단성, 소련당국과 고려인의 종속관계 등이 보여준 삶의 지형도가 여느 한민족의 ‘상상의 공동체’와도 구별되는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고려인 작가들이 억압과 망각 속에 그 자체로 보존된 고려인의 과거를 재현하는 일은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이고, 이것은 고려인의 조국을 상상 속에서 재현하고 창조하는 일이다. 고락을 함께한 고려인들의 삶을 재현하는 일이야 말로 그들의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조국을 건설하는 창조적 행위이다.



삶의 방식과 관계의 망이 다르기 때문에 고려인의 ‘상상의 공동체’는 남한이나 북한이 만들어낸 ‘민족’의 개념과는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려인 소설은 한국소설의 하위 영역이나 지방문학의 하나로 편입시키려는 것은 제고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48)는 ‘한국문학’과 ‘해외한인문학’을 동일한 종개념으로 보고 그 상위 개념으로 ‘한민족문학’을 설정한다. ‘한민족문학’이 남ㆍ북한 문학과 ‘해외한인문학’을 모두 포괄하여 하나의 문학사로 기술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어떻든 고려인문학, 특히 고려인 단편소설은 그 독자성이 보장되어야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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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opographical Map of Short Stories written by Central Asian Ethnic Koreans
Lim Hwan-mo

Prof. of Chonnam National University


Ethnic Koreans' Literature is work to write and make public that were written by Ethnic Koreans for them who emigrate from Vladivostok to Central Asian.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how to make shot story that was described diaspora living trajectory of ethnic Koreans and what gained meaning and value through analysis to Kim, gi-chol's Bok-byeol(1969), Han, jin's Fear(1989), Song, lavrenggi's Area of Triangle(1989).

I want to find the reason why Ethnic Korean writers wrote shot story with ethnic korean to disappear. It is because of this to be a shortcut to take aim what is the identity of their, where are the goals. Writing of fiction for Ethnic Korean writers in Central Asia is the act of writing “History live on in people's memories" in oder to show “How they lived and how would they live".

 Bok-byeol(1969) is that specifically reproduced the determination of the act to join to ranks of the armed struggle against the forces of imperialism in japan voluntary. Fear(1989) creates of a space of struggle to keep words and character of Ethnic Korean through determination of the action to preserve "Choson classic books" with a spirit of the patriotic hero at death. Area of Triangle(1989) shows a novel format to consider as a friendly relations between Kazakhstani and ethnic Korean, that sympathy and decidedness in life is assimilation strategies of local adaptation for survival.

If ethnicity or homeland is a social and cultural edifice that was formed a posteriori by other nations conflict or contacts rather than this is an essential element to exist from the original, we can say that their short stories which are to reproduce and create a novel format of their life were an 'imaginary community'. After all, to relive the past by ethnic Korean writers is the task of reviving memories, it is that they reproduce and create the motherland in the imaginary. That is what to reproduce Ethnic Koreans' life along with joys and sorrows is the creative act to build the motherland as 'imaginary community'.

카자흐스탄 고려인 시 연구

ИССЛЕДОВАНИЕ ЗАМУЖНИХ ЖЕНЩИН-ИММИГРАНТОК В КОРЕЙСКО-КИТАЙСКИХ РОМАНАХ

Сонг Мёнг Хи, профессор националь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Пукёнг
송 명 희

부경대학교 교수
1.

카자흐스탄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나는 카자흐스탄한인들의 문학, 범박하게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과 그것들에 대해서 연구한 저서와 논문들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다.

읽은 작품으로는 카자흐스탄에서 발행된 작품집 ��시월의 햇빛��(1971), ��꽃피는 땅��(1988)과 한국에서 발행된, 정상진의 ��아무르만에서 부르는 백조의 노래��(2005)와 김병학이 채록하여 편저한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전2권)(2007) 등이다. 그리고 연구서로서 김필영의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사��(2004), 이명재 외의 ��억압과 망각, 그리고 디아스포라��(2004), 장사선․우정권의 ��고려인디아스포라 문학연구��(2005), 김종회의 ��한민족문화권의 문학��(2003) ��한민족문화권의 문학2��(2006) ��중앙아시아 고려인디아스포라 문학��(2010), 강진구의 ��한국문학의 쟁점들-탈식민·역사·디아스포라��(2007), 윤인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2005) 등의 저서와 관련 논문들을 읽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연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다행스럽게 문학사도 출간되어 있었고, 논문들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에 대한 장르적 접근을 넘어서서 조명희․ 강태수 등 개별 작가에 대한 연구와 김준의 ��십오만원 사건�� 등 개별 작품에 관한 연구로 심화되어 가고 있었다.

우선 작품집을 읽은 소감을 말해보면 한 마디로 당혹스러웠다. 내가 상상했던 재외 한인문학과는 거리가 매우 멀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년 동안 재외 한인문학을 꾸준히 연구해왔다. 따라서 재외 한인문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과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작품집은 기존의 재외 한인문학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의외성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10월 혁명, 10월 혁명을 주도한 레닌, 레닌과 볼세비키가 세운 나라 소련에 대한 찬양으로 일관된 천편일률적인 시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내가 지나치게 일부의 작품들만을 읽었기 때문에 이런 느낌을 가지는 것인지 관련 연구서들을 들춰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의 독서 경험이 아니었다. 최강민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시에 나타난 조국과 고향의 이미지」에서 “고려인들이 사회주의적 정체성을 확보했음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애용했던 것은 10월 혁명, 레닌과 스탈린, 사회주의에 대한 찬양이다. 이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소련 사회주의 아버지인 레닌에 대한 칭송이다.”49)라고 적고 있다. 김낙현은 「고려인 시문학의 현황과 특성」에서 “1990년대까지 간행된 고려인의 시 작품에서는 자의든 타의든 소련을 자신들의 조국으로 형상화하여 소련공민으로서의 삶에 충실할 것을 역설하고 있으며, ‘레닌’으로 대표되는 이념적인 찬송성향이 모든 시집에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시뿐만 아니라 고려인 문학 전반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경향이라 할 수 있다.”50)라고 분석하고 있었다. 즉 다른 작품들까지 폭넓게 읽었던 다른 연구자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일본, 미주지역의 재외 한인문학들과 중앙아시아 고려인문학은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로 재외 한인문학에서 드러나는 가장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주제는 민족정체성에 대한 갈등, 고향에 대한 향수, 거주국에서 적응의 어려움, 모국과 거주국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화 충격과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은 민족정체성에 대한 갈등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거주국에 동화된 소련의 국민일 뿐이었다. 고향에 대한 향수도 그들의 시에는 표출되지 않았다. 그들의 조상이 살았던 조선은 물론이며,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하기 전까지 정착하던 연해주에 대한 향수마저도 전혀 표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집단적 상처가 되었을 강제 이주와 중앙아시아에서 새롭게 정착하면서 겪었을 고통에 대해서도 그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모국과 거주국의 문화적 갈등이나 세대 간의 갈등 같은 것도 전혀 표출되지 않았다. 서정시가 개인의 주관적 정서를 표현하는 양식이라는 점에서 볼 때에 고려인들의 시에서는 개인적 주관적 정서의 표출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은 여타 지역의 재외 한인문학과 닮은 것이 아니라 중국조선족문학 또는 북한문학, 즉 사회주의 국가의 문학들과 닮아 있었다. 중국조선족의 계몽기문학(1949-1957 상반기)이 당의 문예정책에 따른 사실주의 작품과 송가 등이 주류를 이룬 것처럼51), 그리고 북한의 시문학이 혁명송가 「김일성 장군의 노래」(리찬), 서사시 「백두산」(조기천)(1947) 등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에 대한 인민들의 존경과 흠모, 신뢰와 충성의 감정을 노래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으며, 이와 같은 수령 형상시의 전통이 1990년대까지도 계속 이어졌던 것처럼52)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시문학 역시 10월 혁명을 주도한 혁명가 레닌에 대한 칭송, 혁명 투쟁과 건설사업의 고취, 조국인 소련에 대한 찬양 등으로 시종일관했다. 즉 개인적 감정을 은폐한 채 거주국인 소련 국민으로서의 집단적 페르조나를 투사한 시들이 대부분이었다.
2.

탈식민주의 이론가 에드워드 사이드(E.W.Said)는 망명의식으로부터 파생(filiation)과 제휴(affiliation)라는 이론을 창출하는데, 파생이란 세대와 세대 사이의 자연스런 전이나 계속성, 또는 자신이 태어난 문화와 개인과의 관계를 말한다. 제휴란 태어난 이후에 갖게 되는 여러 가지 결속-예컨대 교우관계, 직업, 정당 활동 등-을 의미한다.53) 이민자들에게 모국인 한국은 일종의 파생이며, 거주국은 그들이 선택하여 관계를 맺은 제휴에 해당된다.

그런데 ��시월의 햇빛��에는 파생의 완전한 단절과 일방적인 제휴의 태도가 전경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해석에 굉장한 혼란과 당혹스러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먼저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은 북한의 문학과 유사성을 보일 수 있다는 것(실제 해방 후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은 북한문학에 영향을 끼쳤으며, 조기천과 같은 시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구 소련의 전체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정치체제하에서 당국의 검열을 비롯하여 자기검열의 결과일 수 있다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나는 나의 당혹스러움을 풀기 위해 관련 연구서들을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고려말로 그들의 문학을 창작하고 작품집을 발간해 왔다는 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언어는 민족성의 가장 중요한 지표이자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련에 철저히 동화적 태도를 보이는 한편에서 ��레닌기치��를 통해서 모국어인 고려말로 창작을 하였다.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소련에 동화된 이율 배반성을 나타냈다. 이 의문을 풀어야 하는 것이 이 글의 과제처럼 보였다.

민족어를 통해 민족 집단의 문화적 가치와 민족 주체성이 세대에 걸쳐 전승되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민족어를 어느 정도 잘하느냐는 민족문화와 정체성이 세대 간에 지속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측정하는 지표가 된다. 그런데 고려인의 경우, 구 소련의 다른 소수민족들에 비해 러시아어로의 동화가 빠르고 완전하게 이루어졌다. 민족어인 고려말을 할 수 있는 비율은 1989년에 47.2%로 감소한 반면, 같은 해 러시아어로 말하는 비율은 49.9%로 계속 증가해왔다. 구 소련의 여타 소수민족집단에서 민족어를 말할 수 있는 비율이 80%가 넘는다는 사실과 비교해 볼 때에 고려인의 언어 교체는 무척 빠르게 일어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구 소련체제하에서 고려인이 택한 생존과 신분상승의 전략에서 연유한다. 즉 러시아어가 의사소통, 과학, 지식의 언어로서 그리고 고려인과 같은 소수민족 집단들의 사회적 신분상승의 도구로서 군림해 왔기 때문에 러시아 지배사회로 동화되고 수용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언어 교체로 나타난 것이다.54) 하지만 소련의 붕괴 이후 카자흐어나 우즈벡어와 같은 현지어를 구사하지 못함으로써 고려인들은 새로운 언어적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실제로 고려인들이 선택한 전략은 이들이 사회경제적으로 교육수준이 매우 높으며, 직업에서 화이트칼라의 비율이 48.3%에 달하는 중상류층의 계층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데서55) 보듯 성공적이었다. 이와 같은 고려인의 신분상승은 다른 이민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서 그들의 거주국 적응전략이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언어적 차원에서 러시아어로의 동화가 빠르게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민족동일시, 민족 애착, 사회적 상호작용의 측면에서 고려인들은 민족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민 1,2세대는 물론이며 3,4세대들이 비록 현지 주류사회에 언어적․ 문화적․구조적으로 동화하였다고 하더라도 고려인으로서의 민족정체성과 애착의 수준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한 민족정체성의 유지는 소수민족으로 구별되고 다르게 대우받는 것에서 기인한다. 신체적으로 러시아인들, 원주민들과 구별되는 고려인들에게 동화는 본인의 의사나 희망 여부에 따라서 선택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56) 고려인들이 거주국에 강한 동화적 태도를 보이는 한편으로 민족정체성 역시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양립하기 어려운 모순으로 받아들여진다. 고려인들의 이중적이고 복잡한 생존전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인 것이다.

따라서 ��시월의 햇빛�� 등의 작품집에서 보여주는 ‘파생의 완전한 단절과 일방적인 제휴의 태도’ 역시 일종의 생존전략의 창작태도가 아닌가 여겨진다. 즉 소련 지배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기 위한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그들은 모국어교육을 포기하고 러시아어교육으로 언어교체를 이루었으며, 높은 교육을 받고 전문직 등 화이트칼라계층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그들의 문학마저도 그들의 내면을 은폐하고, 집단적 페르조나를 투사하는 ‘10월 모티프’를 반복적으로 형상화하는 송가형태의 시들을 써온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소련의 해체 이후 고려인들은 강제 이주에 대한 재해석과 억압했던 기억들을 소환해낸다. 그리고 보다 자유로운 시적 자아를 표출한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을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민족 단체를 형성하고 강제이주 문제를 재해석하고 민족문화 재생 및 권익 보장을 위한 활동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야말로 오랫동안 소련인으로 동화된 페르조나 속에 고려인으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감추고 있다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내가 읽었던 작품집은 결국 소련 지배사회에서의 신분상승을 위한 생존전략, 검열이라는 제도와 자기검열, 그리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문학창작의 태도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필립 김은 “만주나 간도에 이주한 한인들은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은 이러한 희망마저 빼앗기고 민족의 언어와 문화의 말살을 종용받으며 새로운 문화권에 동화되어 가는 사람들”로 규정하며, 이들의 “시문학에서 좀처럼 실질적 조국에 대한 동경이나 감상적 추억의 형상화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를 “쏘베트 문학정신에 입각한 의도적인 것”으로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시인이 시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공민이어야 하며 또한 문학이 어떻게 공산주의 건설에 기여해야 하는가” 하는 문학의 당위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했다.57)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토록 10월 혁명에 열광한 이유가 위에서 언급한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1860년대 중반부터 경제적 동기에 의해서 촉발된 고려인들의 연해주로의 이주가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합병한 이후 특히 1919년에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보다 정치적인 동기를 띤 이주로 바뀌게 된 사실과 관계가 있다. 즉 연해주 지역을 독립운동의 전진기지로 삼으려고 독립운동가, 지식인들이 조선 땅을 넘어서 이 지역으로 이동하였으며, 이와 같은 정치 망명, 독립운동 성격을 띤 이주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58)

연해주로의 정치적 망명, 또는 독립운동의 성격을 띤 이주를 촉발시키고, 이주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해 준 사건이 바로 레닌에 의해서 주도된 10월 혁명이었던 것이다. 특히 레닌에 의해 표방된 민족자결권, 인종과 민족을 초월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의한 혁명성은 일제의 탄압하에 고통을 겪던 조선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민족으로서의 형식은 유지하되 내용은 사회주의적으로 동질화한다”는 이념, 소수민족들의 자결권을 인정하고 소비에트가 다민족국가로 조화롭게 발전할 것을 강조하는 레닌의 정책에 조선에서 온 이주민들이 매혹을 느꼈을 것이며, 이러한 태도가 일정 부분 작품 형상화에 반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고려인들은 연해주의 경제적 성장에 기초하여 민족문화와 교육을 장려하고 군대를 양성하여 고국의 독립운동을 수행할 수 있는 기지로 발전시키려 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1928년 전로중앙집행위원회에 극동조선공화국의 수립을 청원하는 등의 자치주 건설운동으로 표면화되었다. 하지만 이는 대러시아주의를 표방하는 스탈린 정권에 의해서 좌절되었으며,59)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가 추진되었다. 그러나 그 꿈이 좌절되기 전까지 연해주에 이주한 고려인들이 소련에 크나큰 기대를 갖고 있었고, 조명희의 「시월의 노래」 같은 시는 바로 그와 같은 고려인들의 기대와 꿈을 대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카프 탄압으로 망명한 조명희, 비록 그는 스탈린에 의한 소수민족 강제이주에 즈음한 소수민족 지도자 숙청작업에 의해 1938년에 총살당하였지만 그 이전까지 10월 혁명에 대한 순수하고도 강한 환상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3.

베리(J.W.Berry)는 이주민들에 대한 다수집단 성원들의 문화정책전략과 이데올로기를 4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이주민들의 고유한 정체성과 생활방식을 존중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사회통합을 이루도록 하는 다문화주의, 이주민들이 그들의 정체성과 고유문화 대신에 주류집단의 정체성과 문화를 습득함으로써 주류집단에 동화시키려는 동화주의, 소수집단으로 하여금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도록 하되 주류집단과는 교류하지 않도록 하는 분리주의, 소수인종집단을 배척하여 그들만의 고유문화를 추구하도록 지원하지도 않고, 주류집단과의 교류나 관계증진도 추구하지 않는 배척 등이 그것이다.



한편 베리(J.W.Berry)는 소수집단의 문화적응 전략과 이데올로기를 그들이 고유문화의 정체성을 얼마나 중요시하는가 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문화적 유지(cultural maintenance)와 이주민이 새로운 주류문화를 수용하는 정도를 뜻하는 접촉과 참여(contact and maintenance)의 두 가지 차원에서 4가지로 분류하였다. 즉 고유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이주사회에의 참여를 추구하는 통합(integration), 새로운 이주사회의 참여를 추구하지만 고유문화에 대한 정체성 유지에는 소극적인 동화(assimilation), 고유문화의 정체성 유지에는 가치를 두지만 새로운 문화와의 상호작용에는 소극적인 분리(separation), 고유문화 유지에 대한 의지도 약하고 새로운 문화와의 접촉이나 상호작용에도 관심이 없는 주변화(marginalization)가 그것이다.60)

문제는 다수의 주류집단이 다문화주의를 추구하면 소수집단은 통합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반면 주류집단 대부분이 동화주의, 분리주의, 배척의 정책을 채택하면 소수집단이 통합적 정체성을 가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레닌은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민중들을 혁명대열에 동참하게 만들기 위해서 소수민족의 민족자결권을 인정하였다. 러시아의 소수민족들은 혁명대열에 능동적으로 참여했고, 이 과정을 통해서 결집된 민족의 역량으로 소수민족들은 독립․자치 등을 주창하고 나섰다. 처음에 레닌은 언어정책 등 민족자결권을 지키려 하였으나 소수민족의 자결권 요구가 거세지자 선회하였고, 스탈린은 더욱 강압적이고 급진적인 소수민족 동화정책을 펼쳤다. 대러시아주의에 입각하여 국경지역 및 전략적 요충지역의 수수민족은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었으며, 사회적·민족적 역량이 강한 민족일수록 더욱 그 표적이 되었다. 스탈린은 각 민족들의 민족문화들은 단일언어를 갖는 단일문화로 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고려인들이 모국어를 등한시한 채 경제적 사회적 신분상승에 도움이 되는 러시아어를 배우는 데 열성적이었으며, 통합된 정체성을 추구하기 어려웠던 것은 소련이 강력한 동화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려인들의 소수집단의 문화적응전략과 이데올로기는 새로운 이주사회의 참여를 추구하지만 고유문화에 대한 정체성 유지에는 소극적인 동화(assimilation)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소련이 “이주민들의 고유한 정체성과 생활방식을 존중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사회통합을 이루도록 하는 다문화주의”가 아니라 “이주민들이 그들의 정체성과 고유문화 대신에 주류집단의 정체성과 문화를 습득함으로써 주류집단에 동화시키려는 동화주의”를 채택하는 소수민족정책을 채택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이후 자유화의 물결과 소련의 해체로 인해 소수민족들은 정치적 독립과 사회문화적 자치권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의 고려인 문학이 강제이주기의 문학과 차별되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과거 금기시되었던 주제들을 다루게 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변화된 정치적 상황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이제 고려인들은 왜곡하고 은폐하였던 과거의 경험과 기억들을 복원하면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상황에서 창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모국과의 교류의 물꼬를 텄다. 고려말로 문학하는 사람의 숫자는 극소수로 줄어들었지만 이는 이민 3,4세대로 넘어가는 다른 재외한인문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의 경제적 영향력의 증대와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증대되고 있다. 이민 3,4세대에게도 모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새롭게 생기고 있는 것이다.61)

고려인들이 연해주를 거쳐 중앙아시아에 정착하는 고난의 역정과 거주국에의 적응과정에서 경험한 디아스포라의 경험들은 주류사회에서는 가질 수 없는 소중한 문학적 자산들이다. 또한 모국과 거주국의 문화적 융합과 혼종성 역시 신선하고 독창적인 문학적 상상력을 환기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의 삶이 갖는 사회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갈등을 비롯하여 고려인의 이중적 정체성, 주변성, 모호한 경계를 오히려 자신의 문학적 개성이자 에너지로 활용하는 전략과 태도가 필요하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 3세 아나톨리 김의 작품은 16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으며, ��신의 플루트�� ��해초 따는 사람들�� ��꾀꼬리 울음소리�� 등 여러 작품이 한국에 번역되어 있다. 문제는 작품성이다. ��네이티브 스피커��를 쓴 재미한인 1.5세 이창래의 작품에 대해서도 미국의 주류문단이 크게 주목한다. 그는 지난해 노벨상 후보로도 올랐다. 그는 영어로 작품을 쓰며, 한국계미국인이 겪는 이방인으로서의 체험을 작품화하여 미국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작품을 모국어로 쓰느냐 현지어로 쓰느냐 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A Study of Korean-Kazakhstanis Poetry
Song, Myung-hee

Prof. of Pukyoung National University

This review expresses personal opinions about the Korean literature in Central Asia, ��Siwolui Haetbit(The Sunshine of October)��(1971), a collection published in Alma-Ata, Kazakhstan.

��Siwolui Haetbit�� consistently praises Russian October Revolution, its leader Lenin, and the Soviet Union founded by him and Bolshevik. Korean poets represent the assimilated attitude into the Soviet Union without any conflict of national identity, and they didn't reveal even nostalgic toward their native place. They kept silent about the pain they went through under deportation in 1937 and settlement in Central Asia. This poetic trend highly deviates from a type of other Foreign Korean Literature.

Korean had high-quality education and learned Russian instead of the native language in order to enter the white-collar level successfully. Moreover, even in literature, they had concealed the inside and written poetry that have a form of an anthem, which projects Collective Persona. However, after appearance of Gorbachev and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they reinterpreted deportation and recalled suppressed memories. They had hidden Korean identity into Persona assimilated as Russian for a long time.

��Siwolui Haetbit�� was born by survival strategies for upgrading status in the Soviet Union-dominated society, the policy of censoring and self-censorship, and the literature-creative attitude based on socialism.

However, is that all? It is Russian October Revolution that caused economic emigration to the Maritime Province of Siberia, political exile, and independence movement-featured and philosophical migration. Immigrants from Joseon were excited about Lenin's policy, and this attitude would be reflected to literature of Korean such as Jo Myung-hee, who was exiled by oppression of KAPF. Jo Myung-hee was shot for Stalin's purges of minority leaders in 1938, but until then, didn't he have vain fantasy of Russian October Revolution?

Now the number of writers who use Korean is very few. This phenomenon appears equally in other Foreign Korean Literature of the third and forth-generation Korean immigrants.

It is precious literary property that experience of diaspora such as Korean suffering from settlement in Central Asia through the Maritime Province of Siberia, adaptation to their country of residence, and so on. In addition, cultural fusion and hybridity of the mother country and the country of residence can call creative imagination. Strategies and attitudes to apply diaspora's conflict, ambivalent identity, marginality, and vague boundaries as own literary personality and energy are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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